최종편집: 2024-03-19 20:01

  • 흐림속초2.7℃
  • 비4.7℃
  • 구름많음철원5.2℃
  • 구름조금동두천5.9℃
  • 구름조금파주5.3℃
  • 구름조금대관령1.5℃
  • 구름많음춘천4.8℃
  • 맑음백령도4.8℃
  • 비북강릉5.4℃
  • 구름많음강릉6.3℃
  • 맑음동해9.2℃
  • 구름조금서울6.9℃
  • 맑음인천5.3℃
  • 흐림원주6.6℃
  • 구름조금울릉도7.8℃
  • 박무수원6.1℃
  • 맑음영월6.3℃
  • 구름많음충주6.0℃
  • 구름많음서산5.2℃
  • 맑음울진8.8℃
  • 황사청주7.0℃
  • 구름많음대전6.0℃
  • 구름조금추풍령6.5℃
  • 맑음안동9.1℃
  • 맑음상주8.1℃
  • 맑음포항11.7℃
  • 구름많음군산5.9℃
  • 맑음대구10.7℃
  • 구름많음전주6.3℃
  • 맑음울산11.4℃
  • 맑음창원11.4℃
  • 황사광주7.0℃
  • 맑음부산12.0℃
  • 맑음통영11.5℃
  • 황사목포6.8℃
  • 황사여수10.1℃
  • 맑음흑산도6.8℃
  • 맑음완도8.3℃
  • 구름조금고창5.7℃
  • 맑음순천6.8℃
  • 흐림홍성(예)5.8℃
  • 구름많음5.5℃
  • 황사제주10.8℃
  • 맑음고산10.1℃
  • 맑음성산10.3℃
  • 맑음서귀포10.9℃
  • 맑음진주10.6℃
  • 구름조금강화5.3℃
  • 구름많음양평7.5℃
  • 구름많음이천5.9℃
  • 흐림인제3.7℃
  • 흐림홍천6.0℃
  • 맑음태백2.6℃
  • 구름조금정선군4.1℃
  • 맑음제천4.8℃
  • 맑음보은6.2℃
  • 구름많음천안5.9℃
  • 흐림보령5.7℃
  • 구름많음부여6.4℃
  • 구름조금금산5.7℃
  • 구름많음5.8℃
  • 구름많음부안6.5℃
  • 구름많음임실5.6℃
  • 구름많음정읍6.1℃
  • 구름많음남원6.9℃
  • 흐림장수4.0℃
  • 구름조금고창군6.1℃
  • 구름조금영광군6.1℃
  • 구름조금김해시11.7℃
  • 구름많음순창군6.8℃
  • 맑음북창원12.1℃
  • 맑음양산시12.7℃
  • 맑음보성군8.5℃
  • 맑음강진군8.1℃
  • 맑음장흥7.7℃
  • 맑음해남7.4℃
  • 맑음고흥9.8℃
  • 맑음의령군10.3℃
  • 맑음함양군7.1℃
  • 맑음광양시8.9℃
  • 맑음진도군7.2℃
  • 맑음봉화7.1℃
  • 맑음영주6.3℃
  • 맑음문경7.5℃
  • 맑음청송군7.0℃
  • 맑음영덕10.1℃
  • 구름조금의성9.2℃
  • 맑음구미9.3℃
  • 맑음영천10.5℃
  • 맑음경주시11.3℃
  • 맑음거창6.6℃
  • 맑음합천9.9℃
  • 맑음밀양11.2℃
  • 맑음산청7.6℃
  • 맑음거제11.2℃
  • 맑음남해10.4℃
  • 구름조금13.0℃
기상청 제공
[기고] ‘백제 무령왕의 해’가 밝았습니다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백제 무령왕의 해’가 밝았습니다

김정섭 공주시장

김정섭 공주시장
김정섭 공주시장

 

[굿뉴스365] 서기 521년, 백제 무령왕은 중국 양(梁)나라의 수도 남경에 사신을 보냈다. <삼국사기>와 <양서>에 따르면, "고구려를 여러 번 깨뜨려 우호를 통하고 백제가 다시 강한 나라가 되었다(누파구려 갱위강국)”고 국서를 보낸 무령왕에게 양 무제가 ‘영동대장군’의 직을 주었다고 한다. 1971년에 발굴된 무령왕릉 지석에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라고 쓰인 유래다.

 

2021년은 무령왕의 ‘갱위강국 선언’으로부터 1500년, 무령왕릉 발굴로부터 5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521년은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한 지 46년, 무령왕의 통치 20년째 되는 해였다. 백제는 비로소 위기를 넘기고 국제사회에 권토중래한 것이다.

 

무령왕은 웅진·사비 백제의 기틀을 튼튼히 놓은 중흥군주였다. 웅진 천도(475년)의 직접 원인이었던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유역을 회복하고 남쪽으로는 섬진강 일대를 확보했다. 왕권을 위협하던 귀족세력을 제어하고 좌평제를 22부제로 바꿨으며 넓힌 영토를 22담로제로 통치했다. 저수지를 만들고 농토를 늘려 생산력을 증대시켰고 비축양곡을 풀어 백성을 적극 구휼했다. 그의 아들 성왕은 부왕이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왕위에 올라 16년째 되는 538년에 사비에 더 넓은 터를 닦아 수도를 옮겼다. 덕분에 백제는 무령왕의 직계 왕통이 660년까지 번성할 수 있었다.

 

또한 무령왕은 중국과 일본을 확실한 우방으로 확보했다. 해상직항로를 개척해 송·제·양·진 등 남조와 활발히 소통, 교류했다. 왜국과는 역사상 가장 밀접한 관계를 형성해 마치 형제국에 하듯 각종 선진문물을 전해줬다. 나라 중흥의 기틀을 닦은 무령왕은 훌륭한 인품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무령왕은 백제의 가장 위대한 왕이면서 공주시의 자긍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새해 공주시는 시정 화두를 ‘갱위강시 동심동덕’(更爲强市 同心同德)으로 정했다. 무령왕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강한 공주시를 만들기 위해 한마음으로 함께 힘쓰자는 뜻이다. 무령왕 시절의 옛 영화를 재현할 수는 없다. 조선 선조 이후 330년간 충청감영·충남도청이 주재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다. 1500년 전 무령왕이 선언한 갱위강국의 뜻을 오늘에 다시 새겨 발전의 밑돌로 삼고자 겸허히 노력할 따름이다.

 

먼저 무령왕릉 발굴 50년, 갱위강국 선포 1500년을 기념하는 도안을 만들어 무령왕의 해임을 선포하고, 왕릉이 발굴된 7월 8일을 전후해 50주년 기념식을 거행한다. 국립공주박물관의 특별 전시와 국제학술회의 개최, 무령왕 전기 출간도 이어진다.

 

무령왕은 523년 음력 5월 7일에 서거했다고 왕릉 지석에 써있는 대로 특별한 추모제를 거행한다. 일본 북큐슈 가카라시마의 무령왕 탄생지에서 한-일 합동 기념제를 치르는 것도 하나의 목표이다.

8월 13일부터 29일까지는 ‘세계유산 축전’이 공주-부여-익산의 백제역사유적지구에서 열리고, 9월 초, 무령왕의 동상을 백제의 왕성이었던 공산성 앞에 세우는 것으로 후세의 추념과 존경의 뜻을 표할 것이다. 시민들이 함께 만들 기억상자에는 1448년 만에 빛을 본 무령왕릉처럼 이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기록들을 담을 것이다.

 

9월 18일 ‘대백제전’(제67회 백제문화제)이 공주에서 개막해 10월 3일 부여에서 폐막할 때까지 16일간 펼쳐진다. 2010년에 한 달간 ‘세계대백제전’을 치르면서 ‘1400년 전 대백제의 부활’을 노래했듯이.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속에서 새해를 맞으면서, 수많은 재난과 전쟁으로 민족 절멸의 위기를 겪었던 옛 시대를 그려본다. 한사람의 뛰어난 지도자에 의해 모든 난관이 극복되었을까? 그 시대 모든 이들의 인문적 지혜와 철학, 과학기술의 총합으로써 이겨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함께 손잡고 어깨 겯고 발맞춰 이 고비를 뚜벅뚜벅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동심동덕이다.

 

※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포토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