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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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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n이슈

김일성의 아이들

6,25 전쟁 과정서 민족의 비극 뒤 숨겨진 이야기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의 다큐 영화 다시 선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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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판 '김일성의 아이들' 상영 후 관객들의 질의에 응답하고 있는 김덕영 감독/사진=송경화 기자

 

[굿뉴스365] 16년의 제작기간에도 불구하고 관객 2천명에도 미치지 못했던 김덕영 감독의 다큐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이 감독판으로 다시 지방에선 처음으로 23일 공주 메가박스 영화관에서 시사회를 갖고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6,25 전쟁중 남과 북은 300만명의 사상자를 내는 동족상잔을 벌였고 이 와중에 10만명의 전쟁고아가 발생했다는 사실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당시 남한 정부는 전쟁고아들을 해외 입양 등의 방법으로 소화하지만 북한은 전쟁중이던 1952년 소련과 체제 우월성 선전을 위해 공식적으로 5000명, 비공식적으로 1만명의 아이들을 동유럽에 ‘위탁교육’이란 미명하에 이주시킨다.

 

이들 전쟁 고아들은 낯설고 물선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체코 등 5개 나라에서 분산 수용했다. 이 영화는 바로 이들의 이야기다.

 

김일성 정권은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후루시초프 정권이 들어서며 독재 철권 통치에 대한 비판이 일고 ‘스탈린 격하 운동’과 함께 서방과의 해빙 무드가 조성되자 북한정권은 1956년부터 이들을 다시 송환해 1959년까지 완전히 송환작업을 마무리했다,

 

이 사건은 1956년 김일성이 동유럽을 방문할 무렵 발생한 종파분쟁과도 관련이 깊다.


1956년 당시 김일성은 이례적으로 동류럽에 약 한달간 체류하는데 이때 북한에서 김일성의 독재에 맞서 소위 갑산파를 중심으로 한 종파분쟁이 발생했던 것.

 

결국 무정과 김두봉 등 갑산파는 모두 숙청됐지만 동유럽에서 위탁교육을 받던 아이들은 이 여파로 모두 국내 송환이라는 결과를 맞았다.

 

김일성은 유럽의 문화와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후일 자신이 내세우는 주체 유일사상체제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로 판단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로 돌아온 아이들은 이후 생사가 불분명해 졌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이들을 인솔했던 교사들 역시 운명은 마찬가지였다.

 

루마니아 조선학교에 발령받은 제오르제타 미르초유는 이곳에서 교장직을 수행하는 조정호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들은 당시 외국인과의 사랑이나 결혼이 어렵던 시절 국경을 넘은 사랑을 했다.

 

마침내 어렵사리 당국으로부터 결혼 허가를 받은 두사람의 행복은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북한의 송환 명령에 따라 북한으로 돌아간 남편 조정호를 따라 북한에 온 미르초유 여사는 이곳에서 딸을 낳았지만 남편인 조씨와는 이별 아닌 이별을 해야 했고 결국 생활고를 못 이겨 루마니아로 돌아왔다.

 

그리고 딸을 키우면서 평생 남편을 그리며 살고 있다.

 

다큐제작 당시 미르초유 여사의 나이는 85세.

 

그래도 그녀는 이미 실종됐거나 죽었다고 알려온 소식을 믿지 않고 북한에 살아있을지도 모를 남편을 기다리며 생존자를 기원하는 제단에 촛불을 밝힌다.

 

미르초유 여사 뿐 아니라 북한으로 떠나간 전쟁고아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기다리던 이들이 모두 떠나면 어쩌면 잊혀져 버릴 역사가 바로 ‘김일성의 아이들’이란 다큐 영화로 영원한 기록으로 남겨지게 됐다.

 

시사회에서 김덕영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자유”라고 규정했다.

 

‘건국전쟁’에 이어 또다시 국민에게 던지는 김덕영 감독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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