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9-10 01:20
개막식에서부터 각기 다른 버전으로 수차례 불리며 마치 ‘0시 축제’의 주제곡 같은 가요가 ‘대전브루스’다.
‘쌍팔년도’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가요 ‘대전 브루스’는 1959년에 처음 발표됐다.
열차 승무원 출신인 작사가 최치수가 자신 바라본 대전역 플랫홈에서 안타까운 연인들의 이별 장면을 노랫말로 그려낸 것.
여기서 쌍팔년도는 단기 4288년. 즉 1955년을 말한다.
참혹했던 전쟁이 끝나고 피어난 사랑이 어수선한 사회상 속에서 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연인들의 애처로움을 부르스 곡에 담았다.
아마도 이 연인들이 생존해 계신다면 90살 안팎은 족히 되었을 듯 싶다.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다.
대전역도 변했고 대전발 0시 50분 목포행 완행열차가 사라진지도 50년이 넘게 흘렀다.
그래도 여전히 대전역에는 0시 50분 완행열차가 곧 출발할 듯 여겨지고 대전역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은 여전하다.
그런 면에서 대전의 ‘0시 축제’는 여느 축제와 다르게 각별하다.
대전의 ‘0시 축제’가 자정에 열리는 줄 알고 느긋하게 출발한다면 아마도 조금은 당혹스러울 듯 싶다.
자정을 무려 6시간이나 앞둔 오후 6시. 축제의 주행사장인 대전역 광장과 중앙로 무대는 이미 인파로 인산인해였다.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모였는지 추산하기도 어렵겠지만 굳이 추산할 이유도 없었다.
본관이 대전인 ‘꿈’씨가 멀리에서 우주에서 대전시장의 초청을 받아 대전역 광장에 내려온 시간은 7시가 조금 지난 시각. 1993년 태어난 꿈씨(본명 꿈돌이, 전직 1993 대전엑스포 마스코트)는 그동안 결혼해서 자녀를 5명이나 두었다고 한다.
그동안 가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던 꿈씨도 이번에 특별히 시간을 내서 온 가족을 이끌고 대전을 방문한 것이다.
이날 개막식에는 오세훈 서울시장도 함께했다.
아마 오 시장도 대전시민에게 축하 말을 건냈지만 참으로 부러웠을 거라 생각한다.
서울찬가를 비롯해 수많은 가요들이 서울을 찬미하고 있긴 하지만 ‘대전부르스’ 만큼 한국적인 노래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한과 정서를 당시의 시대상에 맞춰 풀어낸 서사가 ‘대전브루스’ 다.
그런데 대전시는 이 같은 ‘대전브루스’를 21세기형 도시 축제로 재탄생 시킨 것이다.
비록 ‘0시 축제’는 이제 막 출발했지만 그 연원을 따져 올라가면 호남선이 대전에서 분기한 100여년의 세월이 녹아 있으며 70여년의 사회상을 밑자락에 깔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약의 장을 펼치는 것이다.
대전 ‘0시 축제’에는 젊음이 있고 미래가 있다. 그리고 즐길 줄 아는 시민이 있다.
입추가 지나서인지 ‘0시 축제’가 피크로 향하는 대전역 광장 10일 자정 온도는 25도.
트롯 가수 장민호와 한껏 즐겼던 행사장은 이제 먹거리 시장으로 향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역시 대전은 젊음의 도시이고 청춘의 거리다. 과거의 ‘대전브루스’가 70년 전 대전역에서의 이별이라면 오늘의 K-Pop 과 트롯으로 리메이크 된 대전브루스는 새로운 만남과 즐거움이다.
그래서인지 우주에서 온 대전 출신 꿈씨 가족이 멀지 않은 대전의 미래를 웅변하는 듯하다.
지금은 전 국민이 함께하는 축제지만 수많은 외국인이 찾아오는 세계적인 축제로 도약할 날도 멀지 않았다. 더 먼 미래라면 아마도 저 멀고 먼 행성에서 대전의 ‘0시 축제’를 찾아오는 외계인이나 지구교포도 있지 않을까. 꿈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