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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과 꽃향에 젖은 서원

기사입력 2021.03.09 07:58
산앙루

[굿뉴스365] 겨울의 끝자락에 찾은 논산 돈암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이 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를 벗어나긴 했지만 1880년 연산천의 범람으로 장소를 이전해 현 위치에 자리했다.

이 서원에서 가장 큰 건물인 응도당은 당시 이전을 못하고 있다가 1970년에 이르러서야 현 위치로 옮겨졌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돈암서원은 정형화된 서원 본래의 모양과는 많이 다르다.

가장 큰 강의실이자 강당이었던 응도당을 대신해 양생당이 주 건물로 자리했고 그 뒤로 사당인 숭덕사가 자리한다.

숭덕사에는 사계 김장생 선생을 중심으로 신독재 김집,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 선생들이 배향되어 있다.

이들 네분은 모두 문묘에 배향된 동방 18현에 속해 있다.

그리고 응도당 옆으로 사계선생의 아버지인 황강 김계휘 선생이 사계를 비롯한 아이들을 가르쳤던 서당인 정회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원래는 벌곡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회당의 당호 현판 글씨다. 불과 8세의 소년이 썼다고 기록되어 전해지는데 서체의 웅혼함이 놀랍기 그지없다.

정회당 옆에 놓인 건물이 장판각으로 1800여장의 판각을 보관하고 있다.

바로 이 판각이 ‘사계전서’ 51권 24책의 원천이다.

돈암서원은 비록 사계 사후에 지어졌지만 그의 아들이자 제자인 신독재 선생으로부터 수학한 이들이 충청은 물론 이후 조선을 이끄는 학자들을 배출했다.

물론 동춘당과 우암, 그리고 초려 이유태, 미촌 윤선거, 시남 유계 등이 이곳을 통해 학문을 연마했으며 나라의 동량으로 성장해 갔다.

돈암서원의 초입엔 광산 김씨가 연산에 자리 잡게 한 양천 허씨의 홍살문으로부터 시작된다.

돈암서원 전경

양천허씨의 정절을 기리는 홍살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맘씨 좋아 보이는 원장이 정겹게 맞아준다.

그는 최근 대장암 진단을 받고 치료하기까지 자신이 겪은 일을 담담히 서글서글하게 터놓았다.

그의 계속되는 이야기에 같이 간 이들과 함께 ‘다행이다, 어휴~ 어쩜’ 등 우환에 안도와 공감이 절로 나왔다. 천운으로 초기에 발견했고 치료 또한 잘됐다고 했다. 특히 그렇게 좋아했던 술과 담배를 끊었다는 것. 그는 동행인들에게 금주와 금연을 반드시 하라는 말도 잊지 않고 조언했다.

사계와 신독재 그리고 동춘당과 우암 등 800여명의 사계문도들이 학문을 갈고 닦아 묵향이 그윽할 줄 알았던 돈암서원이다.

얘기 도중에 그가 건네준 이름 모를 한 송이 꽃이 띄워진 머그잔을 통해 금새 온 방안이 꽃향기로 가득해졌다.

동행인들과 각자 자기 몫의 잔을 잡고 ‘음~ 향기, 음~ 향기 좋다’를 한참을 연발하며 음미했다. 마치 온 몸이 꽃향기에 젖어드는 듯한 착각마저 인다.

오래 전 돈암서원이라는 곳에서 글을 읽던 선비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의 풍류, 운치, 기개...

지금 마주하고 있는 친근하고 서글서글한 그의 모습에서 어느새 사계 선생의 한 모습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응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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